[현금영수증] 현금영수증 발행의무화 어떤 업종인가?

현금영수증 발행의무화 어떤 업종인가?

 

 

카드 결제를 하려고 할 때 병원 및 의원, 약국 등에서 가격을 할인해 주는 방법으로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경우가 있다. 국세청은 가격인하를 조건으로 현금거래를 유도해 현금영수증 발행을 기피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201141일부터 다음의 내용과 같이 현금영수증 발행을 의무화 했다.

 

 

현금영수증의 의무발행

 

1. 다음의 업종을 경영하는 사업자로서 현금영수증가맹점으로 가입한 사업자는 건당 거래금액(부가가치세액을 포함한다)30만원 이상인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하고 그 대금을 현금으로 받은 경우에는 상대방이 현금영수증 발급을 요청하지 않더라도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한다. 다만, 사업자등록을 한 자에게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하고 계산서 또는 세금계산서를 교부한 경우에는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아니할 수 있다(2010.12. 제정).

 

사업 서비스업

 

변호사업, 회계사업, 세무사업, 변리사업, 건축사업, 법무사업, 심판변론인업, 경영지도사업, 기술지도사업, 감정평가사업, 손해사정인업, 통관업, 기술사업, 도선사업, 측량사업

 

보건업

 

종합병원, 일반병원, 치과병원, 한방병원, 일반의원(일반과, 내과, 소아과, 일반외과, 정형외과, 신경과, 정신과, 피부과, 비뇨기과, 안과,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방사선과 및 성형외과), 기타의원(마취과, 결핵과, 가정의학과, 재활의학과 등 달리 분류되지 아니한 병과), 치과의원, 한의원, 수의업

 

기타 업종

 

일반교습학원, 예술학원, 골프장업, 장례식장업, 예식장업, 부동산중개업

 

 

2. 현금영수증을 의무적으로 발급해야 하는 경우로서 소비자가 현금영수증 발급을 원하지 아니할 경우에는 무기명으로 발급할 수 있다(2010.12. 제정).

 

3. 현금영수증 의무발행 대상업종을 경영하는 사업자는 직전 과세기간의 수입금액이 2,400만원 미만이더라도 현금영수증가맹점에 가입한 경우에는 제1항이 적용된다(2010.12. 제정).

 

4. 현금영수증 발급의무 대상인 건당 거래는 거래당사자와 약정(인지·협의 등)한 거래 총금액이 있는 경우에는 총금액 기준 또는 거래대금을 지급받은 금액을 기준으로 판단한다(2010.12. 제정).

 

 

 

 

 

현금영수증 발행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면

 

현금영수증 발행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그 재제가 아주 무겁다. 변호사 등 전문직인 발행의무자가 30만원 이상 거래에 대해 현금영수증을 미발급 시에는 미발급금액의 50% 해당액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신고한 자는 20%의 포상금을 지급받게 된다. 포상금 지급한도는 미발급의 경우가 건당 300만원, 연간 1500만원까지며 발급거부의 경우 건당 50만원이며 연간 200만원 한도다.)

 

1만원 미발급 시

50% 과태료 5,000

신고포상금 2,000

10만원 미발급 시

50% 과태료 50,000

신고포상금 20,000

1000만원 미발급 시

50% 과태료 5,000,000

신고포상금 2,000,000

 

 

아울러 현금영수증 미발행에 대한 신고기한이 기간이 5년으로 연장됐다. 국세청은 201222일 거래분부터 이 같은 규정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30만 원 미만의 거래금액에 대하여도 소비자가 발급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여야 한다. 또한 의무발행대상은 아니라 할 지라도 발급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5%의 가산세를 물어야 하고 현금매출명세서 미제출금액의 1%에 해당하는 가산세를 물게 된다.

 

이처럼 정부의 공정사회를 위한 현금영수증 발행 감시활동이 강화될 것으로 보이므로 현금거래분에 대해서는 현금영수증을 성실하게 발행하는 것이 과다한 과태료를 피하는 방법일 것이다.

 

[창업성공사례] 두 번의 창업 실패 학교까지 그만두고

 

고대 학생회장, 두 번의 창업 실패 학교까지 그만두고




◇세 번째 도전해 성공


만 스물여섯의 나이에 벌써 사업을 해 보고 두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세 번째 사업에 도전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 정수환 앱디스코 대표는 대학생 시절 창업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 시작한 사업에서 짧은 시간 안에 정착하고 있다.


정수환 대표는 중학생까지 태권도 선수였다.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공부를 해도 그는 제대로 했다. 요즘처럼 아주 어릴 때부터 영재 교육이다, 과외다 하는 분위기에 비하면 한참 늦은 셈이다. 그래도 열심히 해 고려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2005년이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그가 느낀 것은 학생들의 목소리가 학교에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심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까지


그는 스스로를 ‘하고 싶은 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고 했다. 이런 성격은 나중에 사업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고집스럽다는 단점이 있지만 판단이 맞을 때는 확실한 의지와 방향성을 갖고 일을 추진할 수 있다.


총학생회장이 된 것도 가장 큰 이유는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뭐든 악착같이 달라붙어 제대로 하고야 마는 그 성격과 추진력이 그를 총학생회장으로 만들었다. 2008년 그는 고려대 총학생회장이 됐다. 하지만 총학생회장 경험은 그에게 새로운 숙제를 안겨줬다. 사회 공헌 활동과 이 활동을 청년들의 단체를 통해 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더 강하게 했기 때문이다.



◇사회공헌위해 사업시작


2009년 청년 단체 활동을 시작한 그는 어찌 보면 처음으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게 된 것 같다. “금전적인 필요성을 느꼈어요. 돈이 없으면 사회 공헌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그래서 외주 개발 일을 맡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러다가 기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매력적이라는 걸 알게 됐죠.” 2010년 대학생 정수환은 그래서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첫사업 경험부족으로 실패


사업 경험이 없이 개발 용역만 동료들과 해본 경험이 전부였던 그에겐 경험자의 조언이 필요했다. 카카오 이제범 대표는 그에게 사업을 위한 멘토가 돼줬다. 잠시 카카오에서 일하며 사업을 한다는 것, 대표이사가 된다는 것에 대해 어깨너머로 배운 그는 법인을 설립했다. 청년 단체 활동을 하면서 외주 개발을 맡아 모은 돈 3000만 원이 사업 밑천이 됐다. “개인 사업으로 시작하면 흐지부지될까봐 주식회사로 시작했어요. 처음엔 왕십리에 하루에 1만 원 내면 사무실을 대여해 주는 곳을 썼죠. 결국엔 안암동 고려대 앞에 사무실을 차리게 됐어요.”


경험이 없다는 것, 그리고 사업을 하기로 했지만 아직 현실에 대한 감각이 부족했다는 것은 그에게 실패를 경험하게 했다. 사회 공헌 쪽에 관심이 많아 ‘선행을 릴레이하자’라고 하는 사회적 기업의 성격을 지닌 사업이 그의 첫 일이었다. 경험 부족에 사업 성격이 모호한 점이 맞물려 첫 사업은 실패하고 말았다.



◇소셜커머스로 두 번째 도전


그는 바로 다시 도전에 나섰다. 2010년 10월 소셜 커머스 서비스 해피즌을 시작했다.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고 한다. 첫 사업을 실패한 데다 소셜 커머스를 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게 이유였다. “저도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죠. 그런데도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도 주위 사람들의 만류 때문인지 그는 친구들과 함께 시작하면서 시한을 걸었다. “3개월 해 보고 안 되면 접자.” 늦게 하다 보니 투자 받기도 쉽지 않았고 지출만 늘었다. 결국 3개월 만에 사업을 접게 됐다. 2011년 초였다. 이것저것 합하면 1억 원 넘는 빚만 지게 됐다. 같이 일하던 친구들도 모두 그를 떠났다.



◇두 번의 실패, 학교까지 그만두고 모든 것을 걸었다


실패는 혹독했다. “정말 아침에 일어나 해를 보기가 싫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그때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의 특징은 힘든 가운데도 뭔가 활동을 하면서 재기를 모색한다는 점이다. 그 역시 그랬다. 대학 동기인 황원준 씨를 만나 창업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최신 트렌드를 공부했다. 둘은 결국 창업하게 된다. “해피즌 당시에 정말 열심히 했지만 기본적인 경험이 부족해 초기에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실패를 곱씹던 그는 문득 그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광고하는 것이 아직 국내에서 본격화되지 않았고 해외에서는 가능성을 이미 보여준 분야라는 것에 착안했다. 그래서 그는 2011년 7월 앱디스코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사업 직전 학교를 그만뒀다. 졸업을 불과 한 학기 남겨뒀는데 말이다.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 약해지고 결단을 못 내릴 것 같아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승부사적인 면도 엿보인다. 물론 빚을 갚아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그는 그래서 ‘이 사업에 목숨을 걸었다’고 했다. 애드라떼의 키워드는 영업이었다. 사업 시작 전 투자를 받으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직접 영업을 뛰면서 광고를 수주했다. CJ 등 20여 개의 대기업으로부터 미리 광고 영업을 수주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광고를 보고 카페라떼 한 잔’이 처음 내세운 모토였다.



◇4개월여 만에 누적 다운로드 수 100만 건 달성


그는 광고의 흐름이 소비자에게 혜택을 돌려주는 쪽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독창적인 모델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발로 뛰는 영업력으로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놓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애드라떼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면 광고주들이 올린 광고를 볼 수 있다.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기 때문에 단순 광고는 아니다. 광고를 보면 적립금이 쌓인다. 친구를 초대하면 500원씩 현금이 생긴다. 이것으로 진짜 커피를 사먹을 수 있다. 이런 보상성 때문에 애드라떼는 지난해 8월 출시된 이후 4개월여 만에 누적 다운로드 수 100만 건을 달성했다. 일본에도 진출해 앱스토어 무료 분야 전체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해외에서의 성공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자료/ 한국경제>


[세계은행] 김용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 세계은행총재 내정

김용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 세계은행총재 내정



◇세계기구 빅3중 2곳이 한국



김용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결정으로 세계은행총재에 내정됐다.

세계은행은 세계 빈곤퇴치와 개발 분야에 있어 매우 중요한 국제기구이며 김 총장은 그간 국제 보건과 개발 분야에서 쌓아온 경험과 식견을 바탕으로 총재의 소임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다.

이번 김용 총장의 지명은 우리 교민 사회에도 매우 힘이 되는 반가운 소식이다.

김 총장이 세계은행총재에 내정됨에 따라 반기문 유엔총장에 이어 세계기구 빅3 중 두 곳의 수장이 한국인이 됐다.






◇세계은행 (World Bank ; IBRD , 世界銀行)이란?



정식 명칭은 국제부흥개발은행(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1944년의 브레튼우즈 협정에 기초해 1946년 6월에 발족한 국제금융기관의 중심적 존재이며, 상업베이스로 장기의 하드 론(hard loan ; 조건이 엄격한 융자)을 행한다.

우리나라는 1955년에 가입했고 1970년 대표이사로 선임되었으며 1985년 10월 제40차 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세계은행은 각국의 경제부흥과 개발촉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는데 현재는 주로 개발도상국의 공업화를 위해 융자를 행하고 있다. 세계은행이 지원하는 개도국의 프로젝트 총 투자액은 연간 500~600억 달러 정도 규모로, 지역별로 중남미 지역이 가장 큰 수혜국이 되고 있다.

분야별로는 석유, 전력 등 에너지 분야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세계은행의 융자방식은 전체융자액 가운데 50~55% 가량은 협조융자 방식으로 지원하고 그 재원은 2국간, 다자간 등 공적차관을 비롯해 각국의 수출신용과 상업차관에서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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